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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강원도

춘천여행> 청평사 #3 -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 거북바위, 구성폭포(구송폭포)의, 공주굴, 청평사 영지

#3


매표소를 통과하면 본격적인 청평사 등산로가 나온다.
오색단풍과 바위사이로 흐르는 물소리에 눈과 귀가 즐겁다.















淸平寺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계곡 바위 위에 동상이 하나 보인다. 보아하니 공주같아 보이고 뱀이 공주를 감고 있다.





- 청평사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 -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곳 청평사에는 "상사뱀과 공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당나라 공주를 사모하던 한 평민 청년이 있었다. 신분상의 차이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청년이 상사병으로 죽자
홀연히 한 마리 뱀이 나타나 공주의 몸을 감아버린다. 공주를 사랑했던 청년의 혼이 상사뱀으로 변한 것이었다. 놀란 당태종은
의원들을 불러 갖가지 처방을 해보았지만 상사뱀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공주는 점점 야위어만 갔다.
신라의 염험있는 사찰을 순례하며 기도를 드려보라는 권유에 공주는 우리나라 사찰을 순례하다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해가 저물어 계곡의 작은 동굴에서 노숙을 한 다음날 범종소리가 들려오자
"절이 멀지 않은 듯합니다. 밥을 얻어오려고 하니 제 몸에서 내려와 주실 있는지요, 너무 피로하고 걷기가 힘겨워 드리는
말씀이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곧 다녀오겠습니다."하니 한번도 말을 들어주지 않던 상사뱀이 웬일인지 순순히 몸에서 내려와
주었다. 공주는 계곡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법당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였다. 한편 상사뱀은 공주가 늦어지자 혹시 도망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공주를 찾아 나선다. 절에 도착하여 절문(회전문)을 들어서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며 벼락이 상사뱀에게 내리쳐 죽은 뱀은 빗물에 떠내려 갔다. 공주가 밥을 얻어 가지고 와 보니 상사뱀이
죽어 폭포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공주는 깜짝 놀랐다. 시원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사모하다 죽은
상사뱀이 불쌍하여 정성껏 묻어주고 청평사에서 머므르다 구성폭포 위에 석탑을 세우고 귀국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때부터 상사뱀이 돌아나간 문을 회전문, 공주가 노숙했던 작은 동굴을 공주굴, 그가 목욕한 웅덩이를 공주탕,
삼층석탑이 공주탑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공주동상 조금 위쪽에는 거북바위가 있다. 앞쪽으로 봐서는 거북이 같지 않은데...















옆모습을 보니 거북바위 맞다.















구성폭포의 아래쪽 폭포로 쌍으로로 흐르는 물줄기가 특징이다.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여름에 물놀이하기 정말 좋아 보인다.















구성폭포(九聲瀑布)
 원래는 구송폭포(九松瀑布)인데, 와전되어 구성폭포로 불린다고 한다.





- 구성폭포의 유래 -
"약헌유고" 등 옛 문헌에 보면 아래, 위 폭포를 한데 묶어 이단(이층)폭포, 형제폭포, 쌍폭(상하) 그리고 구송폭포 등으로 불렀다.
다만 다산 정약용은 상폭을 구송정폭포, 하폭을 경운대폭포로 각각 불렀다. 원래 아래 폭포의 반석과 구송대(九松臺)사이에
아홉 그루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구송(九松)이란 접두어가 붙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아홉가지 소리의 구성(九聲)으로 와전되어
구성폭포(九聲瀑布)라 잘못 부르고 있다.
구송폭포 상폭은 갈수기에만 쌍폭으로 흐르지만 아래폭포는 항상 두 갈래로 흐른다.
현재 위의 폭포를 구송폭포, 아래폭포를 쌍폭이라 부르고 있다.








구성폭포의 한켠에 자리잡은 공주굴. 공주가 노숙을 했던 곳이다.















몸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깊이다.















구성폭포를 지나, 좀 더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진락공 이자현 부도(眞樂公 李資玄 浮屠)" 가 있다.















부도는 고승(高僧)이 죽으면 화장(火葬)하여 나온 사리나 유골을 안치하는 석조구조물이다.
이 부도는 청평사에 들어와 도를 닦았던 고려시대의 뛰어난 학자인 이자현(李資玄:1061-1125)의 것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이자현의 호는 식암(息庵) 또는 희이자(希夷子)였는데, 인품이 뛰어났던 그를 흠모한 고려의 인종 임금은
그가 세상을 떠나자 진락(眞樂)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 부도의 양식은 팔각원당형이고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180cm 이다.












청평사가 멀지 않았나 보다.















< 청평사 영지(影池) >
이 못은 오봉산(五峰山)의 옛 이름인 경운산이 물위에 그림자처럼 떠오른다고 해서 영지라 불리운다.















마지막 세번째 다리를 건너면 절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너자마자 "장수샘"이라는 약수가 있으니, 목이라도 한번 축이고 무병장수의 꿈을 꾸어보자.















장수샘




#4 에서 계속....